2026년 7월 31일 00시 15분.
불암산 백세문 앞에서 불수사도북 트레일러닝을 시작했다.
불암산에서 수락산, 사패산과 도봉산을 지나 북한산 능선 끝까지. 마지막 족두리봉을 넘고 불광동 대호아파트에 닿아야 완성되는 긴 길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는 그 마지막을 밟지 못했다. 향로봉을 지난 뒤 길을 잃었고, 체력 고갈과 탈수 증상이 겹쳐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국립공원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구기동으로 하산했다.
그러니 이 글은 완주기가 아니다. 족두리봉을 앞두고 멈춘 49.52km, 아깝게 실패한 나의 여섯번째 불수사도북 기록이다.
00:15 | 새벽의 불암산, 무서움보다 완주의지
백세문을 통과하자 도시의 불빛은 금세 나무 뒤로 사라졌다. 새벽 산을 혼자 오르는 일은 솔직히 무서웠다. 인기척 없는 숲에서 들리는 소리는 전부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완주하겠다는 의지가 그 무서움보다 조금 더 컸다. 헤드랜턴이 비추는 몇 미터만 믿고 계속 올라갔다.
새들도 자는 시간이라 그런지 길에서는 곤충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나는 곤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둠도 부담스러운데 랜턴 불빛 안으로 불쑥 들어오는 작은 움직임들까지 신경을 긁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무서움을 없앤 것은 아니었다. 무서운 채로 앞으로 갔다.
01시 20분, 불암산 정상.
출발한 지 약 1시간 5분 만이었다. 정상 아래로 펼쳐진 야경은 고요했고, 아직 갈 산들의 능선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첫 봉우리를 찍었지만 마음은 들뜨기보다 차분했다. 이제야 긴 하루의 첫 장을 넘긴 셈이었다.
02:59 | 수락산 주봉, 그리고 더 무서웠던 기차바위
불암산을 내려와 덕릉고개를 지나 수락산으로 붙었다. 02시 33분 무렵 이정표 앞을 통과했고, 02시 59분 수락산 주봉에 도착했다. 새벽 공기 속에서 바라본 도시의 불빛은 아름다웠지만, 몸은 벌써 여러 번의 오르내림을 기억하고 있었다.
03시 10분, 기차바위.
낮에도 긴장되는 바위 구간인데 야간에는 훨씬 더 무서웠다. 랜턴 밖은 바로 검은 공간이었고, 손에 잡힌 로프와 발밑의 마찰에 온 신경을 모아야 했다. 혼자라는 사실이 가장 또렷하게 느껴진 구간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한 동작씩 확인하며 지나갔다.
03시 35분, 도정봉.
뒤로 수락산 능선과 도시의 야경이 멀어졌다. 새벽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불암산과 수락산을 무사히 넘어왔다는 사실이 조금씩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04:34 | 짬뽕라면과 고추김밥, 첫 번째 보급
수락산을 내려와 분식집에 들어갔다. 주문한 것은 짬뽕라면과 고추김밥. 자극적인 국물과 탄수화물이 밤새 움직인 몸을 다시 깨웠다. 근사한 메뉴는 아니었지만 그때의 내게는 무엇보다 정확한 음식이었다. 뜨거운 국물을 넘기며 다음 사패산과 도봉산을 생각했다.
06:00 | 해가 뜨기 시작한 사패산
사패산을 오르기 시작한 새벽 5시 무렵, 숲 사이가 천천히 밝아졌다. 밤새 헤드랜턴에만 의지하다가 하늘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어둠이 걷히는 만큼 내가 지나온 시간도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06시 00분, 사패산 정상.
출발 후 5시간 45분. 아직 하루는 아침에 불과했지만 내 다리에는 이미 두 산과 긴 연결 구간이 쌓여 있었다.
07:24 | 도봉산 신선대, 같은 길을 가는 사람
사패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나처럼 불수사도북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긴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고 짧게 인사만 건넸지만, 밤새 혼자 움직인 뒤라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웠다.
07시 24분, 도봉산 신선대.
아침 햇살이 바위 능선을 비추고 구름은 산허리에 걸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보지 못했던 도봉산의 윤곽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불암산과 수락산의 밤을 지나 사패산의 여명을 보고, 마침내 도봉산의 아침 위에 섰다.
08시 25분 무렵부터 우이동 쪽으로 고도를 낮췄다. 내려가는 길인데도 다리가 가볍지는 않았다. 이제 앞에는 불수사도북의 마지막이자 가장 긴 덩어리, 북한산 구간이 남아 있었다.
09:06 | 우이동 편의점, 김밥과 컵라면
우이동에서는 편의점에 들어가 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 불암산과 수락산 뒤의 첫 보급이 짬뽕라면과 고추김밥이었다면, 사패산과 도봉산 뒤의 두 번째 보급은 김밥과 컵라면이었다. 배를 채우고 잠시 앉아 있었지만 피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몸을 다시 움직일 만큼만 충전하고 북한산으로 향했다.
11:37 | 백운대, 길었던 북한산의 시작
10시 08분, 다시 숲의 오르막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완전히 뜬 뒤라 새벽의 공포는 사라졌지만 대신 더위가 달라붙었다. 10시 39분 하루재를 지나 백운대로 오르는 동안 땀은 계속 빠져나갔다.
11시 37분, 백운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사진 속 표정은 아직 괜찮아 보이지만 몸속의 여유는 이미 많이 줄어 있었다. 출발 후 11시간이 넘었고, 북한산의 능선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11시 50분, 백운봉암문.
백운대에서 내려와 다시 능선을 이었다. 봉우리를 하나 넘을 때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대신 몸은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13:18 | 문수봉, 그리고 향로봉 너머에서 잃은 길
13시 18분, 문수봉.
하늘은 흐렸지만 한낮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문수봉을 지나 승가봉과 비봉, 향로봉 방향으로 계속 이어갔다. 13시 53분 무렵 좁은 바위 통로를 지나고, 남은 거리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족두리봉만 넘으면 불광동 대호아파트. 정통 불수사도북의 끝이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향로봉을 지나 족두리봉으로 가는 길에서 길을 잃었다.
평소라면 지도를 다시 보고 되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그때 이미 체력이 바닥났다는 것이었다. 수분도 부족했다. 방향을 판단하는 힘까지 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 진행하다가는 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고 판단해 119에 신고했다.
15시 05분, 국립공원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아 하산을 시작했다.
사진에는 앞에서 길을 잡아주는 직원분들의 뒷모습이 남아 있다. 그때만큼은 족두리봉보다 안전하게 내려가는 일이 먼저였다. 도움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15:29 | 구기동 하산, 불수사도북 실패
기록은 15시 29분 무렵 끝났다. 도착한 곳은 불광동 대호아파트가 아니라 구기동이었다. 족두리봉도 찍지 못했다. 정통 코스를 기준으로 하면 이번 불수사도북은 실패다. 49.52km를 왔고 산을 여럿 넘었어도, 마지막 점 하나가 빠졌으니 완주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아깝다. 하지만 돌아보면 15시간 넘게 움직인 끝에 체력 고갈과 탈수 증상이 온 상태에서 멈춘 것은 잘한 판단이었다. 종주를 실패한 것과 하산 판단을 실패한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번에는 완주하지 못했지만, 무리해서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돌아온 것이 다음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새벽의 불암산에서 느낀 공포, 랜턴에 몰려들던 곤충, 야간 기차바위의 긴장, 사패산에서 맞은 해, 도봉산 길에서 건넨 짧은 인사, 두 번의 라면과 김밥, 그리고 향로봉 너머에서 맞은 한계까지. 완주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내가 어디까지 갔고 왜 멈췄는지는 분명히 남았다.
불수사도북 트레일러닝 기록
거리 49.52km · 경과 시간 15시간 14분 34초 · 누적 상승 4,084m
평균 심박수 128bpm, 최고 심박수 164bpm. 평균 기온은 30.9℃, 최고 기온은 35℃였다. 시계가 추정한 수분 손실은 6,972ml였다. 섭취량이 별도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이 숫자만으로도 후반의 탈수 증상을 가볍게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선명하다.
코스는 백세문에서 시작해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우이동–백운대–문수봉–향로봉까지 이어졌고, 족두리봉 대신 구기동으로 내려오며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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