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녕의 자전거 전국일주 48일차] 해발 1,010m 두문동재와 펑크 수리

10% 경사, 달력 밖의 겨울

2010년 4월 23일. 아침을 든든히 먹고 자전거에 짐을 다시 묶었다. 전날의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오늘은 해발 1,010m 두문동재를 넘어야 했다. 마음은 이미 정상에 가 있었고 다리만 아직 출발지에 남아 있었다.

48일차 아침 식사
따뜻한 밥으로 몸부터 깨웠다. 산길을 앞두고 밥을 충분히 먹었다.

출발하자마자 10% 경사 표지판이 나왔다. 초반부터 긴 오르막이 시작됐다.

10퍼센트 오르막 표지
출발하자마자 10% 경사 표지판이 나타났다. 숫자는 짧았지만 오르막은 전혀 짧지 않았다.
눈 남은 산길 풍경
산 위로 남은 눈이 보였다. 달력은 4월인데 풍경은 아직 겨울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중이었다.

두문동재를 향해, 터널과 눈 사이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는 차가워졌고 산에는 눈이 남아 있었다. 비에 젖은 도로와 찬바람이 번갈아 체온을 빼앗았다. 속도를 내기보다 페달을 일정하게 돌리는 데 집중했다.

2470미터 터널 입구
길이 2,470m 터널 앞. 긴 오르막 끝에 만난 입구라 반갑다기보다 먼저 긴장됐다.
젖은 산길
산허리를 감은 길은 젖어 있었고 차량은 드물었다. 바퀴 소리와 숨소리만 또렷하게 남았다.
눈 덮인 산 숲
눈을 뒤집어쓴 숲. 힘들어서 멈춘 건지, 예뻐서 멈춘 건지는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오래 오르면 풍경이 바뀌고, 더 오래 오르면 말수가 줄어든다. 숨을 고르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산허리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두문동재 고도 확인
두문동재로 향하는 길에서 고도계를 확인했다. 숫자가 네 자리에 가까워지자 다리도 네 글자로 대답했다. ‘그만 좀.’ 😅
해발 1,010m. 정상 표지 앞에서 숨을 고르며 지나온 길을 천천히 돌아봤다.
두문동재 정상
해발 1,010m 두문동재. 정상 표지 하나가 그동안 삼킨 숨을 조용히 보상해줬다.

내리막의 선물, 그리고 펑크

정상 뒤 내리막은 긴 오르막에 대한 보상처럼 이어졌다. 다만 젖은 노면에서는 기쁨도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누려야 했다. 속도를 줄이고 표지판과 노면을 차분히 확인했다.

두문동재 내리막
정상 뒤에는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올 때의 원망은 바람을 맞자 금세 절반쯤 사라졌다.
정선 방향 표지판
진부 63km, 정선 18km. 목적지는 표지판 속 숫자로 보였고, 오늘의 현실은 젖은 노면 위에 있었다.
비에 젖은 굽은 길
산길을 빠져나오며 길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방심하지 않고 브레이크와 노면을 번갈아 살폈다.

그렇게 잘 내려간다 싶었는데, 뒤쪽에서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전해졌다. 자전거를 세우고 보니 바퀴가 푹 꺼져 있었다. 산은 넘었지만 오늘의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펑크 난 자전거 바퀴
바퀴가 이상해 세워 보니 타이어가 주저앉아 있었다. 산을 넘었더니 이번에는 작은 구멍 하나가 길을 막았다.
튜브 점검
튜브를 꺼내 물리지 않은 공기를 찾았다. 여행자는 정비사가 아니어도, 길 위에서는 결국 정비사가 된다.
여러 번 수리한 튜브
기존 펑크 자국 옆에 새 구멍이 보였다. 튜브는 패치 수로 오늘까지의 고생을 기록하고 있었다.

짐을 내리고 휠을 분리한 뒤 구멍을 찾아 패치를 붙였다. 이미 여러 번 때운 튜브라 새 패치를 붙일 자리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길 위에서는 ‘될 때까지’가 정비 매뉴얼의 첫 장이다.

튜브 패치 작업
패치를 붙이고 꾹 눌렀다. 잘 붙으라는 마음까지 손가락 끝에 함께 눌러 담았다.
휠 재조립
휠을 다시 끼우고 공기를 채웠다. 자전거가 바로 서는 순간, 나도 덩달아 허리를 폈다.
수리 후 다시 출발
정비를 마치고 다시 출발. 멈춘 시간은 길었지만 바퀴가 구르면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로 돌아온다.

1,010m에서 500m로

수리를 마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바퀴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지는지 한동안 귀와 발끝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공기는 잘 버텼고 고도는 조금씩 낮아졌다.

해발 500미터 표지판
해발 500m 표지판을 만났다. 1,010m에서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에 긴 내리막이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논밭 사이 시골길
논밭 사이 곧은 길. 높은 산을 넘고 나니 평범한 직선도로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해 보였다.
산 아래 마을길
산등성이 아래 마을을 지나며 하루가 천천히 저녁 쪽으로 기울었다. 무리하지 않고 머물 곳을 찾았다.

높은 산과 긴 터널, 젖은 내리막, 그리고 펑크까지 한날에 몰려왔다. 힘든 장면이 많았지만 하나씩 지나고 나니 결국 모두 오늘의 풍경이 되었다.

48일차 야영 준비
자전거를 세우고 짐을 풀었다. 고개를 넘고 펑크까지 수리한 긴 하루를 마쳤다.
두문동재의 높이는 1,010m였지만, 오늘 가장 오래 남은 숫자는 패치의 개수였다. 그래도 바퀴는 다시 굴렀고 길도 다시 이어졌다.

49일차 — 밤길까지 이어진 12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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