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0일 화요일. 자전거 전국일주 24일차.
오늘도 달린다. 원래는 제주 서쪽을 따라 한 바퀴 돌 계획이었지만, 어제 1,100고지를 오른다고 섬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계획표는 이미 접혔고, 이제 동쪽으로 반 바퀴를 더 돌아야 한다.
가는 길에 ‘검은모래해변’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정말 모래가 새까만지 궁금해 방향을 틀었지만, 정작 해변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흘러나온 모래를 보니 완전한 검정이라기보다 짙은 회색에 가까웠다. 이름은 강렬했고, 입구는 수줍었다.
제주의 역풍은 적극적이었다
사진을 다시 따라가 보니, 이날의 공기와 긴장이 생각보다 선명했다. 당시에는 지나치기 바빴던 감정까지 천천히 정리해 본다.
다시 길에 올라 편의점에서 우유와 값싼 쿠키로 허기를 달랬다. 여행자의 간식은 화려하지 않아도 페달을 한동안 더 돌려준다.
길은 계속 이어졌다
지도에는 선 하나로 보이지만 실제 도로에는 소리와 경사, 긴장이 함께 있었다. 길을 읽는 감각도 조금씩 몸에 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잘못 들어 제주 돌담 사이의 소로로 들어갔다. 방향감각은 잠시 사라졌지만, 대신 계획에 없던 풍경이 나타났다. 길을 잃었다기보다 제주가 다른 길을 보여준 셈이다.
길을 조금 헤매도 여행은 계속됐다.
바람은 늘 정면에서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다리에는 정확히 남는다. 같은 거리도 역풍 앞에서는 전혀 다른 하루가 됐다. 😮💨
돌담길을 빠져나오니 다시 해안도로가 이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다만 오늘은 고독보다 역풍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페달보다 거센 상대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다리에는 정확히 남는다. 같은 거리도 역풍 앞에서는 전혀 다른 하루가 됐다. 😮💨
오랜만에 만난 역풍은 여행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거셌다. 잠시 멈춰 쉬어도 바람은 쉬지 않았다. 자전거는 앞으로 가려 하고, 제주의 바람은 계속 되돌려 보내려 했다. 둘 사이에서 다리만 성실하게 야근했다.
바람아, 오늘은 조금만 봐주자.
오르고, 또 숨을 고르고
오르막에서는 멋진 문장보다 짧은 호흡이 먼저 나온다. 그래도 한 번 더 밟으면 조금은 앞으로 간다. ⛰️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졌다. 내리막에서 잠깐 벌어 둔 속도는 다음 오르막에서 금세 회수됐다. 그래도 바다와 돌담, 낮은 마을이 차례로 지나가니 힘든 와중에도 고개를 들게 됐다.
해가 기울 무렵 오늘 달릴 만큼은 충분히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하루는 결국 목적지 쪽으로 흘러왔다. 제주에서는 곧은 길보다 돌아간 길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바람에 밀리고 길을 잘못 들었어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다. 오늘의 결론은 간단하다. 역풍은 다리보다 마음을 먼저 밀어내지만, 마음을 다시 앞으로 돌려놓는 것도 결국 내 몫이다.
24일차를 접으며
돌아보면 이날의 핵심은 목적지보다 그곳까지 이어진 장면들이었다. 속도계의 숫자보다 사진 사이에 남은 감정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
24일차 기록
주행거리 : 51.3km
총 주행거리 : 135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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